No Logo: 브랜드 폭격

No Logo
No Logo *photo:Flickr _ KayVee.INC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원제 <No Logo>, 나오미 클라인 지음, 2000년 초판 발행)>의 6장을 요약한 메모.

다국적 기업들은 다양성에 대해 말하지만 실상 눈에 보이는 것은 마케터들의 말대로 유니폼을 입고 아무 생각 없이 쇼핑몰로 행진하는 10대 무리뿐이다. 다인종 이미지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시장 주도형 세계화는 다양성을 원하지 않는다. 만화경처럼 쏟아지는 ‘다양성이 통합된 거리’ 이미지부터 “어디로 가고 싶어요?”라고 묻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꼬임까지, 우리는 매일 광고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경제면에 나오는 세계는 검정색 하나뿐이고, 사방의 문은 모두 쾅 닫혀 있다. 새로운 회사 매입 소식도 있고, 갑작스런 부도 소식에 대규모 합병 이야기도 들린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선택지가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어디로 가고 싶어요?”라는 질문의 본 뜻은 “내가 원하는 곳에 당신이 가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이다. No Logo: 브랜드 폭격 더보기

한국 전쟁기념관과 영국 제국전쟁박물관IWM

Front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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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주에 한국의 전쟁기념관 + 영국의 제국전쟁박물관(IWM)의 비교 PT를 했는데요. 결과적으로 국수주의적인 한국전쟁기념관의 어두운 면이 많이 부각된 시간이었습니다. 한국 전쟁기념관을 설명하자니 구한말과 한국전쟁, 미군점유지였던 기념관부지에 대한 얘기도 하게 되었고요.

이름만 보자면 Imperial War Museum.. 제국주의적인 시각으로 재단된듯 보이지만, 그리고 말을 들어보니 80년대까지도 그러했지만, 최근 20년간에 걸쳐 이 영국 제국박물관의 전시들이 정말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헨리무어의 조각전(주로 인간, 기계, 폭력, 전쟁이 주제)이 2층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전쟁을 비판한 철 조각품들과 1층에 벌려져있는 2차대전 당시의 무기들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기념관과 영국 제국전쟁박물관IWM 더보기

S Korea plans to withdraw one-third of troops from Iraq

[Captured Article] The Hindu News Update Service

Seoul, Nov. 18.(AP): South Korea plans to bring home about one-third of its troops from Iraq next year, the Defense Ministry said Friday.
Defense Minister Yoon Kwang-ung reported the plan to withdraw about 1,000 troops from Iraq to the ruling Uri Party on Friday, the ministry said. About 3,200 South Korean troops are stationed in northern Iraq to help rehabilitate the country, making Seoul the second-largest U.S. coalition partner contributing forces after Britain.

The announcement comes a day after South Korean President Roh Moo-hyun met U.S. President George W. Bush in the South Korean city of Gyeongju, where the leaders insisted their countries’ alliance was strong and agreed to work together to curb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ambitions.
South Korea’s move caught the White House by surprise. “They have not informed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of that,” said National Security Council spokesman Frederick Jones.
Jones said Roh didn’t raise the subject of troop withdrawals with Bush when they met Thursday in Gyeongju.
“This issue was not raised,” Jones said. “Just the opposite.”
He said Bush expressed appreciation for the South Korean troops and Roh expressed pride in the accomplishments of the South Korean forces.

‘태극기 휘날리며’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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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를 들고 들어간 극장 안에서 나는 왼편의 스피커 옆에 앉아있었다. 영화는 이미 시작되었는지 어느 노인이 등장하다가 이내 해방 이후의 거리로 바뀌었다. 오십년대의 시장통에서 벌어졌을법한 수수한 일상, 그 속에서 살던 한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왼편의 스피커가 웬지 이상하더라니, 영화를 보는 내내 깜짝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총소리가 작을 수 있겠느냐 마는, 꼭 전투가 시작되는 첫 총성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앞사람의 의자를 치기도 하고, 놀라서 고개를 돌리느라 중요한 장면을 놓치기도 하였다. 그만큼 이 영화는 소리조절과 화면조절을 상당히 급박하게 전환되도록 만들어진 것 같았다.

나는 전쟁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평소엔 영화를 정말 안보는 편이지만, 전쟁영화는 그나마 찾아서 본 편이다. 나는 전쟁영화를 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평온한 세상을 확인하고 안도하지만, 그런 안도감의 이면에는 상황을 언제건 뒤바꿀 수 있을 불안요인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함께 느끼게 된다. 전쟁영화의 시나리오나 원작이 얼마나 사실에 근거하는지 알 수 없으나 무작정 그것은 다큐멘터리라고 믿어버리기도 한다.

어설픈 점이 보였다. 반합도 모자랐을 시절에 등장하는 반짝거리는 스테인리스 식판, 많이 들어서 알고 봤던 어색한 전투기 그래픽들, 그리고 잔인하게도 – 형제가 같이 끌려가서 서로 겨누다가 동생이 살아오는 – 전체적인 스토리 또한 그리 놀랍지는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눈을 적시게 된 이유는, 그런 어설픈 부분에 비해서 너무나 고마운 진일보한 균형감각 때문이었다. 형의 동생 살리기는 그래서 더 눈물겹다.

우리는 헐리우드의 눈을 통해서, 혹은 과거 군사정권의 시각을 빌린 영화들을 통해서 2차대전과, 한국전쟁을 만났었다. 그 모든 전쟁에는 선악이 뚜렸했다. 하다못해 그 태극기마저 윗쪽의 빨간색보다 아랬쪽의 파란색이 크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원래 빨갱이만 들고 있어야 할 죽창을 들고 어색하게도 빨갱이들을 죽이는 장면과, 웬지 하면 맞을것 같은 말인 “씨팔 일정때는 나라지킬라고 싸웠지만 지금 이게 뭐하는 지랄이냐. (필자 주)”라는 공형진의 대사는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부분, 형이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북쪽을 향해서 다시 총질을 해대고, 그런 형으로 인해 동생은 남쪽으로 살아 돌아와 어머니를 만난다. 그러고 보니 그 땅,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땅이 바로 남한 땅이다. 그런 총질로 만들어진 긴장의 땅인가보다.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는 남쪽에서 만들어졌으니 당연히 남쪽으로 돌아오는 동생으로 그려졌겠지만, 언젠가 시간이 더 흐르면 그 반대편 북쪽의 눈물나는 전쟁스토리도 들어볼 날이 있을 것이다.

덧말 : 나도 한번 아주 길게!! 써보자는 다짐으로 키보드를 두들겼는데 결과적으로 뭐 만족스럽진 못하다. 하지만 대충 내가 이 영화를 본 느낌 중에서 중요한 몇몇은 드러난 것같다. 이런것도 막상 써보려니 어렵네그려..

아, 그리고… 이 영화속, 전장에서의 장동건의 모습은 해안선이라는 영화를 다시 생각나게 하였따.

니콘 F4

무슨 일인지 어젯밤 꿈에는 카메라를 들고 이곳 저곳을 뛰어다녔다.
게다가 나의 목에 걸려있는 물건은 바로 그 육중한 몸매를 자랑했던 니콩 F4!
처음 사진 배울때 얼마나 갖고싶었으면 아직도 꿈에 나올까..
아뭏든 꿈이라서 그런지 실제크기보다 두배는 커보이는 그놈을 들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런 꿈들에 나오는 풍경은 바로..

우리동네에 전쟁이 터져버린거다…
어릴적 뛰놀던 철뚝길(지금은 아스팔트길인데 꿈에선 아직 흙길) 옆으로 패인 곳에 몸을 숨기고
인민군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거다.
얼마나 무서운데.. 정말로…
어쩔때는 코난같은데에서나 나올법한 폭격기편대도 지나간다.

그러그러하여,, 꿈속을 배회하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라는 자각이 들때쯤엔
그놈의 아까운 F4는 잘 걸려있던 목에서 갑자기 없어져버리는거지..

예술 하고 계십니까?

어쩌다 들른 심스페이스란 곳의 발제문을 옮겼습니다.
대충 둘러보니 온라인 미술 커뮤니티인듯,,
썩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는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냥 ‘이런것도 있더라’라고 알려드리기 위해서.. ^^ 회원명단에는 많이 보던 이름들도 있습니다..

제가 임의로 굵은글자로 바꿨구요,
http://www.simspace.com 로부터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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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하고도 유일한 《심스페이스》의 비젼

오늘날 자의건 자의가 아니건 작가들은 사회로부터 적잖게 소외되어 있다. 점점 더 ‘예술’을덜 필요로 하는 것 같은 새로운 산업적 구조 속에서 작가들은 이전에 차지했던 권좌를 상실해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예술은 점점 더 산업화, 구조화되어 가고 있고, 그 흐름은 완전히 제도적으로 진행된다. ‘성공적인 예술’은 갈수록 더 설명이 난처한 개념이 되어가고 있고, 그럴수록 ‘성공한 예술가’의 개념이 그 자치를 차지해 가고 있다. 예술은 점점 더 기업의 기금들과 정부의 보조금에 의해 유지되고 있고, 따라서 기회는 결탁한 전문가들, (좀 구식 표현을 쓰자면) 어용 작가들과 관료주의에 흥건히 젖은 이론가들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유감스럽게도 현대의 흐름은 그 안에서 ‘예술’이란 것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안락한 물결 같은 것이 아니다. 작가들은 이 거대하고도 도도한 흐름, 대학과 출판과 비엔날레 같은 체계 전반의 동원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조성되어지는 이 급류에 의해 점점 더 성형되어 질뿐인 하류의 돌맹이 같은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언젠가 곰브리치가 말했듯, 현대는 예술이란 식물을 키워내기에 적절한 토양이 아니다. 예술은 점점 더 그 의미를 왜곡시키려 다짐이라도 한 듯한 세계 안에서 위태로운 생존을 연명하고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를 빌자면 ‘예술 생산계’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현대로 올수록 예술생산이란 변별된 영역을 위한 최소한의 독립성조차 보장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소통의 황홀경’ 안에서 이끌기보다는 이끌려 가는 사람들의 부류로 재빠르게 밀려나고 있다. 그들은 영향을주기보다는 광고와 영화 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으로부터 동일하게 영향받는다. 자신이 되려는 몰입도,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해방의 의지도 점점 더 이전처럼 그들의 정체성을 대변하지 못 한다.

역설적인 것은 이 희미해져가고 있는 가치들과는 상반되게 작품들은 점점 더 대형화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더 장기간과 더 많은 비용과 사람을 요구하는 것으로 되어가면서 점점 더 작가 혼자서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범주들을 넘어서고 있다. 작품생산이 점점 더 산업 생산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관객들은 이전처럼 취향의 주체가 아니다. 그들은 점점 더 자신들의 취향을 대중매체에 위임하면서 인식의 파편화를 확인시켜 줄뿐이다. 그들은 그저 더 유명하고 알려진 것들을 품질로 간주하는 매체시대의 진실에 방치되면서 저널의 전략에 고스란히 넘어간다. 더구나 이젠 정보화의 시대다. 스스로를 네트웍에 노출시키지 않으면,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없는 그런 시대. 소통은 더할 수 없이 활성화되었지만, 점점 더 한정된 네트웍에 가담해야만 하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소통의 독점, 혹 독점적 소통이랄까, “어떻든 이제 쳐 박혀 있으면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다!”

이같은 환경에선 스타급 작가, 거대한 상업갤러리, 그리고 유수한 미술관의 권위라는 색인표를 가진 식물들만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다. 그리고 상황과 조건들은 이 몇몇 진정한 주체들에 의해 떡주무르듯 유연하게 조절될 수 있는 것으로 되어가고 있다. 경매와 같은 미술시장 시스템은 이와 같은 질서들에 정당성을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강화해 나가는데 최적의 조건들을 마련해 주고 있다.

21세기의 벽두인 이 시점은 적어도 한가지 점에서 이전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세기초만 해도 신진 작가들은 그들을 모르는 척 하는 권력과 시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모이곤 했다. 자신들과 자신들의 예술에 하등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카데미로부터 자신들의 생존을 보호하기 위해 호흡을 같이 할 동료들, 화상과 이론가들을 찾았고, 왕래했으며 때론 밤을 세워가며 토론했다. 그렇게 피사로나 모네 인상주의자들은 시장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얼마 후 드레스덴과 베를린에서 와 그룹이 출범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은 맥락이었다. 젊은 작가들은 전쟁 중에도 취리히의 한 카바레에서 다다를 시작함으로써 이전엔 일면식도 없었던 프랑스의 화가와 아일랜드의 시인이 만날 수 있는 장을 스스로 마련했다. 그런가하면 에른스트나 달리 같은 화가들은 그들에게 이론과 문장을 제공해줄 준비가 되어 있었던 앙드레 부르통과 만났다. 이들 초현실주의자 동료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선술집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자유연애를 실험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들을 만인 앞에 알리고 선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반면 오늘날 작가들은 더 이상 모이기를 즐기지 않는다. 때론 의미부여조차 하지 않는다. 작가들은 점점 더 모임을 즐기지 않도록-혹 못하도록- 사회적으로 학습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동료들과 자리를 함께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서, 각자 철저하게 단절되는 것을 (이전과는 다르게) 창작의 자연스럽고 당연한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작가들과 이론가들, 이론가들과 화상들이 하나의 예술을 위해 모이는 일은 오늘날 지극히 드문 현상이다.

그들은 이제 다른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기다린다. 그렇다고 일이 잘 되어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럴수록 그들 모두는 자신들에게 덜 관대해져 가는 변화된 환경에 더 절망적으로 포위되어 갈 뿐이다. 예컨대 작가들은 점점 더 눈치를 살피다가 운 좋게 캐스팅되는 배우들을 닮아가고 있다. 물론 작가만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미술사 같은 이론의 영역은 자진해서 대학 안으로 움츠려들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미술사가건 기획자건 이제 어떤 호출을 기다리는 일들이 부쩍 늘었다. (이들 중 소수는 기다리는 대신 먼저 나서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앞서 활용한다) 이 모두가 이전엔 분명 그들 손에 있었던 뭔가가 빠르게 보다 상위의 권위로 이양되고 있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대략 되어 가는 현상은 이렇다. 어떤 거대하고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있고, 작가와 같은 개인적인 전문가들은 너무 파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면의 진실을 목격하거나 그것과 대립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그 흐름을 개인적으로 수용해 적절하게 내면화하거나 그러지 않거나(그럴 수 없거나)를 그나마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대다수는 자의건 아니건 전자를 선택한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들은 점점 더 개인화, 파편화됨으로써 불리해져 가는 계약에서 자신을 지킬 줄 모르는 노동자들을 닮아가고 있다. 이렇게 예술은 그 안에서 그 다양한 양상들이 벌어질 뿐인 생존의 영역으로 유입되고 있다.

반면, 그 흐름은 훨씬 더 우월한 박수갈채와 지원 안에서 스스로를 더 생생한 것으로 만들고, 개인적인 전문가들을 압박한다. 따라서 생각이 있는 작가와 이론가, 미술사가들이 이같은 환경에 대응하는 적절한 방식들을 찾아낼 확률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인 포기들이 모여야 하는 이유와 명분을 더욱 쇠약하게 하는 쪽으로 기여함으로써, 작가와 이론가들의 개인화(파편화)를 더 부추길 수 있다.

그럼에도 작가와 미술사가와 평론가들과 미술 행정가들이 모여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있다. 적어도 개인의 꿈과 그 양식화들이 이미 사회화된 그것들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표현이 지니는 가치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겐 서로 자리를 함께 하고 나누는 것이 여전히 의미일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거나 드러낼 난처한 도전들에 대해, 그리고 그에 대한 응전을 논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의 의미 같은 것….

그리고 원한다면 현시대 미술흐름의 난폭성과 조악성에 관해, 그리고 거의 노골적으로 표류하는 한국미술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만나 각자의 두터운 생각들을 교환하고 내면화된 것들을 교류하며, 무엇보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너나할 것 없이 서로 동료를 공감해야 할 동일하고 절박한 조건들에 맞서 있다는 사실을 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실험들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몸에 벤 ‘예술의 전통’이 지시하는 것들, 즉 그 주체, 범주, 기능에 대해 재삼 헤아려 보는 자각으로부터 자신과 만나고 그것을 현재의 시간들과 교차시키는 시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진정으로’ 타자를 향하고 단절을 넘어서는 실험들에 이르기까지.

《심스페이스》는 이와 같은 문제제기에서 출발한 온라인 상의 한 가능성이다. 작가들과 이론가들과 감상자들이 같이 참여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을 마련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가 자신의 만남과 소통을 실현할 적절한 도구들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심스페이스》가 스스로를 출발시켰고, 또 유지해야 할 유일한 비젼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유의미한 출발을 앞서 포장할 필요는 없다. 《심스페이스》의 비젼은 너무나 필요한 것이지만, 이와 상반되는 상황과 조건, 심리들의 장벽에 둘러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즉 장애들 속에서 소통과 만남을 꾀한다는 점에서 《심스페이스》 자체가 하나의 작업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심스페이스》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의 수단이며 방법론이다. 더 많은 작가들이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동참할 때, 비로소 그 유익함이 입증될 수 있을 하나의 방법론!
그러므로 현재로선 《심스페이스》와 같은 시도들이 조금씩이나마 성공을 거둠으로써, 예술에 대한 우리의 숙의들이 지속되고, 그것이 더 확대될 순 없을지라도 더 깊어질 순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볼 뿐이다.

심상용(미술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