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란 이름의 ‘황금 우리’

필자는 귀국하여 ‘교수님’으로 지칭될 때 심기가 불편해진다. 그 누구와도 이름만 부르는 사회에서 ‘타이틀’ 위주의 사회로 옮겨오면서 느끼는 ‘온도차’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으로 대학사회에 발을 내디뎠다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교수란 ‘하고 싶은 공부’만 하는 것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보적 교수’라는 말을 들을 때 형용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외 ‘강단 진보’의 맹점은 무엇인가? 마르쿠제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대학이 거의 유일하게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곳이라고 주장했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학은 기업을 닮아간다. 대학원생·시간강사의 착취가 심한 미국·한국과 대학 하급 구성원의 생계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유럽은 다른 면이 많지만, 정규직 교수가 비정규직 지식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수취하기는 마찬가지다. 유럽은 교수가 중간급 공무원에 해당되어 숙련 노동자 평균 연봉(약 3만달러)의 2~3배 봉급을 받는다. 임금차이가 심한(사립대학교의 경우) 미국에 비해 착취체제의 일원으로서의 지위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정규직 교원의 ‘안정’이 비정규직 교원들의 희생으로 보장되는 점에서는 똑같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하는 한, 정규직 교수가 아무리 관념적 혁명의식을 지녔다해도 사회적 정의 실천에 앞장설 확률은 높지 않다.

정규교수들이 반체제 의식을 과시해도 실제 생활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현재 위치의 유지·강화 (즉, 승진), 그리고 그 주된 수단인 연구를 위한 연구비 등을 구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국가관료나 대자본의 재단·기금들과의 ‘네트워크 만들기’도 이념의 좌우를 막론하고 소홀히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연구·저술할 때 승진 여부를 결정하는 원로·선배, 연구비 지급을 좌우하는 관리자들의 시각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저절로 성역들을 비켜가게 된다. 예컨대, 한국 관변 쪽 연구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해외 한국학 분야에서 과연 한국 사학재단의 내부 구조나 일상적 군사주의, 이주 노동자의 착취 문제에 대한 저서나 논문이 많은가? 그런데, 초미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진보적 내용의 연구라 해도 해당 학계를 의식하는 나머지 이론적 접근이나 의제 설정, 용어·문체 선택 등에서는 학계의 관례와 유행을 따르게 되어 그만큼 ‘일반’ 독자로부터 멀어진다. 이와 같은 일상적 순응주의에 빠지지 않고 꿋꿋하게 온갖 성역을 깨치고 일반인의 접근이 가능한 간결한 문체로 저술하는 노엄 촘스키와 같은 사람도 있지만 아웃사이더 취급받는 그들의 저술을 학술 논문에서 언급할 수 없음은 불문율이다. 학계의 자기 완결적 구조는 무서운 배타성을 가진다.

그렇다면 필자가 ‘상아탑’이 순응주의·서열의식을 강요하고 반체제적 실천을 원천 봉쇄하는 자만적 별천지라는 ‘자아비판’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필자를 포함한 강단의 자칭 진보파들은, 위계적·폐쇄적 공간에서 전개되는 ‘진보’ 담론이 과연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평등과 정의를 ‘바깥’을 향해서 외치기 전에 먼저 ‘우리’ 사회 안에서 실천해야 하지 않는지를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둘째, 진보사회라 해도 교수집단의 일원에게 권위를 부여하여 권력화하는 경향이 있는 바,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 꿋꿋한 ‘진보 학자’였던 전직 교수가 장관이 된 뒤에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볼 수 있는데 이는 교수집단 ‘진보성’의 허와 실, 겉과 속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이기 때문이다.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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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컬럼 http://www.hani.co.kr/section-001000000/2005/03/001000000200503131919035.html

욕망의_사물_디자인의_사회사

8. 전기-미래의 연료 #

1910년대 이후 50년간의 제품의 기술적, 시각적 변화는 앞서 다뤘던 ‘위생담론’으로 충분히 설명되기 어렵다. 기술사는 이런 현상을 오로지 기술적인 ‘진보의 행진’으로 보고 있으나 실상 그 이면에는 ‘전기생산의 폭발적 증가’라는 중요한 요인이 있었다.

영국의 전기공급
1881년, 전기판매가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판매되는 전기가 쓰여질 제품은 고작 조명용품이 전부였고 전기발전 부하율을 불규칙적으로 만들었다. 전기소비가 일부 제품 혹은 일부 계층에 불균형적으로 집중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만 대전기에 걸쳐 폭발적으로 증가된 전기발전산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정 내 전기 사용률 높이기

조명용도에서 발열용으로 전기가 사용되어야 한다는 전력산업체의 요구에 따라 교육기관에서는 전기발열의 장점을 교육시켰으며 이런 상황은 가정용 전자제품 개발의 발단을 제공했다. 한편, 예상과 달리 전기는 가정용으로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당시의 전기료는 상당히 높아서 부유층에게 주로 사용되었으며 주로 사용되던 가스에 비해 전기를 두렵게 보는 시각도 있었다. 당시 그러한 이유로 가정보다는 산업체의 수요가 많았으며 1900년대에는 전기 부하율도 개선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가정용 전력수요가 부하율 조절에 결정적인 점은 바뀌지 않았으므로 가전제품의 개발이 절실한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1905년에서 1914년 사이, 전력공급 엔지니어들은 부하율 개선의 초점인 가전제품의 개발에 큰 관심을 두었다. 그들은 전기를 사용하는 요리기구나 난방기구가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져야 가스기구보다 우월하게 인식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914년 이전부터 가전제품이 생산되었으나 시장규모가 작아서 극소량의 디자인만 제작되었다. 1914년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가전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 디자인들은 기존의 기기에 전기장치만을 붙인 조악한 것이었으며 새롭게 만들어진 용도의 전기제품들도 특성을 잘 보여주는 디자인은 아니었다. P232,233_그림 아직도 전기를 쓰는 실제 가구수는 너무 적어서 부하율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

1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군수산업체의 수요가 많아져서 가정용에 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전후에는 원래와 같은 불규칙한 부하율에 고민했다. 이 무렵 총 전기배선에서 가정용 전기의 배선율은 6%였는데 1963년에는 41%로 증가되었다. 아무튼 양차대전은 전체 전기사용을 높이는 계기였고, 그 시기에는 수요증가의 장해요인들을 없애는 것이 전력산업의 급선무였다.

첫째 장해요인인 요금과 관련하여, 1939년에 실시된 2부 관세 – 균일요금 상태에서의 전기료 인하 – 로 양차 대전 사이의 가정 수요가 늘어났으나 전기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비싼 연료였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점에 대한 대안으로 연료의 특성을 살린 가전제품들이 만들어졌다.

둘째 요인인 전력선의 부족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1918년부터 1939년 사이에 있었고 그로 인해 전체 가구의 배선율이 6%에서 67%로 크게 늘어났다.

셋째 요인은 전기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이는 전기의 원리에 대한 이성적 교육으로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전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자체가 비이성적인 부분이라서 완전히 극복될 수는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전력산업체들은 현대적 이미지로서의 전기상을 알리는 방법을 썼다. “…남는 인간 에너지는 생활을 즐기고 무언가를 배우고 예술적 능력을 배양하고 자유가 필요한 유익한 여가활동을 하는데 쓰일 수 있다. 여가는 더 이상 부유한 사람들의 독점이 아니며 만인이 즐길 수 있는 것으로 확대될 것이다.” 1920년대의 전기는 미래적이며 과학이 가져다 준 최고의 혜택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한편, 가스산업은 미래상에 의존적인 전기에 비해서 현실적인 에너지였다. 그들은 전기를 ‘발명되지도 않은 모호한 에너지’로 폄하함으로써 가스의 가치를 선전했다. 만약 당시의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경제관을 바탕으로 에너지를 선택했다면 전기사용량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그리 증가하지 않았을 것이나, 실제로 전기는 소비자에게 상대적으로 빈약한 비용가치 이외의 다른 부분들-미래의 에너지로서의 전기-에 선전을 집중시느막館?그 사용량을 증가시켰다. 그것을 믿느냐 마느냐는 바로 그 제품이 보여지는 모습에 달려있었고 그것은 바로 전기제품 디자인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전자제품 디자인과 전기의 이미지

전력 공급사를 위해 가정용 전기기구는 효율성과 미래상의 전달이라는 두 가지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으나 1930년대까지 대부분의 전기기구는 이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공급사의 불만도 커져갔다. 1920년대에는 전기제품의 수요가 너무나 적어서 디자인 향상을 위한 자극을 받을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1930년대 초반에 들어서야 가전제품은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제조사는 효율과 디자인의 향상을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 중요한 이유는 전기료의 하락으로 인해 대량의 판매시장을 내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된, 미래상을 구현해야 제품에 대한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점은 디자인 개선의 좋은 이유였다.

한편 미국은 당시 전기산업이 영국보다 더 발달되었었고 ‘현대적 이미지’의 상업성을 앞서 발견했기 때문에 뚜렷한 진보의 이미지를 갖추고 있었다. 몇몇 업체들은 영국에 공장을 세웠고 영국 제조사들은 그들의 디자인을 모방했다. 1930년대 당시의 성공적 디자인들은 바로 전기의 첨단기술적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P243_기술적 이미지의 반영, P246_전기는 가전제품을 통해서만 효율적으로 판매될 수 있다. 가전제품은 소비자에게 첨단기술이나 첨단기술의 이미지를 선사해야만 한다.

현대성과 미래를 상징하는 스타일, 전기가 가져다 줄 미래상에 대한 신화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런 미래기술 지향주의 Technological Futurism은 디자인의 문제를 넘어서 전력산업체의 목표 – 비싼 에너지를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드는 – 와 결부되어있다. 가전제품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전기에 대한 호의적 관념을 전달해서 이전의 선입견과 거부감을 떨치고 전기를 사용하도록 만드는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무선 라디오

라디오는 테크놀로지가 삶의 모든 면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해준, 과학발달의 상징물로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서있다. 그것은 오늘날의 반도체를 이용한 휴대용 계산기처럼 가장 최신의 개발품을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게 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무선라디오의 디자인은 크게 세 단계를 거쳐 발전했다. 초기의 라디오에 있어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바로 기술적인 혁신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당시의 라디오들은 부품들을 주로 드러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조잡한 조립품과 같은 것이었다. 주된 양산모델들은 주로 캐비닛 생산자들에 의해 주문 생산되었다. 1920년대 말에는 라디오제조산업의 인기가 급등했다 막연한 전기주방기구에 대한 의문 대신에 라디오는 보다 확실한 즐거움을 즉각적으로 소비자들에게 가져다 주었고 이점은 전력산업체들에게도 환영 받을 일이었다. 라디오제조산업은 급속도로 혁신을 이끌어갔고 최신의 모델들이 서로 경쟁했다. 그러나 1929년에 이르러 기술발전의 속도는 점차 떨어지게 된다.

2단계의 라디오디자인은 바로 캐비닛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기술부흥기에는 기술을 드러내는 디자인이 유행했다면, 침체기인 이 시기의 소비자들은 상당히 과학적인 이 기기를 거실에 두드러지게 배치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라디오들은 나무 캐비닛에 넣어져 만들어졌는데 이것들은 가구와 크게 구별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따라서 거실에서 나오는 소리가 특별한 어떤 장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현실과 같은 수도 있다는 착각에 사람들은 빠져들었다. 제작사는 어두운 방에서 라디오를 듣기를 권하기도 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현실감과 관련된 딜레마는 텔레비전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그것들이 사실 그 자체라고 믿어버림으로써 그 딜레마를 피했다. 화성침공과 관련된 해프닝은 그 일례이다. 이 기괴한 허구적 사실성을 감추는데 있어 라디오의 가구화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대안이기도 했다. 반면에 이런 디자인은 앞서 유지되었던 미래와 진보의 상징으로서의 라디오상을 알리는데 있어 장애요인이었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캐비닛의 디자인을 일반적인 가구와 달리 현대적으로 만드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런 라디오의 가구화 전체는 라디오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라디오 디자인의 3단계는 바로 미래지향주의였다. 베이클라이트의 개발과 더불어 제작자들은 훨씬 싼 값에 합성수지만의 특색 있는 장점을 가진 캐비닛들을 생산해냈다. P252 하지만 진공관을 사용하는 한 부피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라디오를 가구에 머무를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2차 대전 후 트랜지스터가 개발되자 라디오의 디자인은 변화되어야만 했고 여러 가지의 방법들이 고안되었는데 이로써 라디오는 가구와 결별한다. P254_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그 흥미로운 예이다. * 중앙처리장치의 변화 : 전구 – 진공관(에니악/라디오) – 트랜지스터(기타전자제품/소형라디오) – 반도체를 이용한 집적회로(퍼스널컴퓨터/라디오 회로는 칩 한 개로 충분) – 지속적인 집적화. 소형화를 감당할 전자제품의 소형화와 다각화가 이루어짐. 예) 인체용 나노급 로보트 개발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제작사들은 앞서 언급된 콜사가 발전시킨 개념을 그대로 사용한 현대적 모습의 라디오 만들기에 주력했고 라디오는 기술을 상징하는 현대적 산물로 확실히 인지되었다. 1950년대 이후 라디오디자인의 기술적 발전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제조업자들은 라디오를 마치 과학의 한계를 허물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데 주력했다. 그러한 집착은 우주개발과 관련한 이미지를 라디오 디자인에 사용하기도 하도록 만들었고 반도체가 개발되고 수많은 전자 개발품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후에도 라디오를 지속적으로 미래상으로 유지되도록 만들었다.

미래상에 대한 이미지를 디자인에 이용하는 것은 20세기 디자인사에 흔하게 반복되었던 일이다. 정말 놀라운 것은, 디자이너들이 특정한 메시지를 과거와 다른 방법-글이나 그림의 도움이 아닌-으로 생명이 없는 물체를 통해 전달하는 완벽하게 새로운 방법이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과학과 기술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불안과 근심으로부터 해방된 미래상의 전파에 성공한 ‘디자인’은 20세기의 희한한 현상 중에 하나이다.

20040910 최윤호 발제

* Author / Gathered from : 욕망의_사물_디자인의_사회사 에이드리언 포티, 허보윤 역 / 최윤호 정리

예술사의 철학 _ 아르놀트 하우저

III. 심리학적 방법에 관하여 _ ~ p97 발제 최윤호 20040601

1. 승화와 상징화

프로이드에 의하면, 예술가는 ‘승화능력’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방어 매커니즘’을 통해서, 비현실적인 요구들을 정신영역 안에서 실현 가능한 것으로 전화시킨다. 예술가는 그로인해 허구의 세계에 갇히게 되며 노이로제를 앓는 사람들과 같이 현실세계와 차단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가와 노이로제 환자들과의 차이점은, 예술가들은 유연성을 가지고 현실에 다가서거나 멀어지는 것을 제어할 수 있으며 현실과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객은 예술작품에서 실현된 성취에 대신 참여하고,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의 결과를 통해 소망이 성취되는 것을 누린다. 프로이드는 예술을 통해서 얻어지는 만족의 ‘보상적인 성격’에 관한 진술과 더불어 형식의 아름다움도 관심을 ‘유인하기 위한 프리미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은 예술의 직접적인 목적이 아니며 ‘삶에 대한 문제’가 바로 예술의 목적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프로이드의 이론은 과거에 간과되었던 예술가의 창조적 충동 및 리비도 충동간의 여러 관계를 드러내주었다.
예술에 대한 정신분석적 해석이 얼마나 의미 있느냐 하는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예술창작 행위를 해석하는 데에 유용하느냐와 같은 물음이다. 프로이드의 ‘승화’라는 개념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심리적 전환’에 불과한데, 예술이 성취된 즉 ‘승화’된 형식에서는 처음의 충동이 전환되는 과정은 볼 수 없고 그 목적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성공적인 승화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과 주변여건을 알아야 하며 그 승화란 것이 충동 자체의 소산인지 아니면 예술가의 역사적 혹은 사회적 조건들에 의존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또한 때에 따라 달라지는 충동-예술 사이의 전환과정에서의 ‘차이를 만드는 원리’를 찾지 못하는 한 승화이론으로 예술비평을 시작하기는 어렵다.
프로이드는 그런 승화의 미비한 부분을 수긍했는데, 욕구의 리비도적인 성질이 그것이 승화된 형태 속에 그대로 존속한다는 것과 그러한 욕구의 ‘환상적인 만족’이 훨씬 더 본질적인 것이라고 한 부분이 그것이다. 프로이드는 최종적으로 ‘승화란 충동으로부터 쾌락을 추구하고 그 쾌락을 부여하는 성질을 박탈하지 않은 채 그것의 공격성을 벗기는 일’이라고 함으로써 보다 합당한 진술을 할 수 있었고 다른 이론들과의 일치를 이룩했다.

본능적 충동은 반작용 형성과 승화를 통해서 그것의 목적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데 반작용 형성이 억압을 전제한데 반해 승화는 반대로 그것을 해소한다. 여기서 승화와 상징화의 구분이 필요하다. 상징과 승화는 유사한 역학적 기능을 가지지만 차이가 존재한다. 승화란 심리적 과정이 진행되는 요소들의 단순한 변경 – 이런 구조적 변경은 예술비평과 관련하여 아무런 말도 안한다. – 을 의미하지만 상징은 그와 달리 프로이드의 꿈에 대한 해석에서 이용되는 ‘다원적 결정에 의한 이미지’와 같아서 풍부한 업적을 예술비평에 남겼다. 그런 다원적으로 결정체로서의 상징은 예술가나 관객 누구도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어니스트존스처럼 자발적, 자동적, 무의식적으로 발생된다고 전제한다면 예술창조의 과정을 ‘신비화’시키는 일이 된다. 따라서 그것은 일시적으로 의식되어지지 않을 수는 있으나 무의식의 산물은 아니다.

문화발달에 대한 정신분석적 개념은 여전히 레비브륄과 같은 낭만주의적 인류학에 의존한다. 즉, 비합리적인 것을 정신적으로 근원적인 것이라고 보는 낭만주의적 입장 말이다. 그러나 상징적 형식에서 특징을 찾는다면 그것은 불투명성이나 애매함이 아니라 해석의 가변성에 있다. 성적 상징으로서의 예술작품에 대한 연구에서, 예술이 무의식적인 본능적 충동이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욕구의 표현인 한, 예술이 성적 이미지로 가득 찬 상징언어를 – 수직선이 남성의 성기를 의미한다는 등의 –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다면적인 예술을 평가하기에는 너무도 단조로우며 실제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햄릿에 대한 정신분석적 해석에서, 우리는 예술이 언제나 한 가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과거의 작품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필연적으로 오해를 가져오기 쉽다. 그러므로 역사적 성격규정이나 예술작품의 해석은 단순하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보다는 적합과 부적합, 자명한가와 촛점이 흐린가, 주제에 대한 새로운 눈을 열어주는가와 그렇지 않은가를 따지는 것이라야 한다.

정신분석은 그러나 수확이 없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감수성을 꿰뚫어 보면서, 예술에 새로운 특징들을 불어넣어 윤택하게 했다. 어떤 예술의 전체를 나타낼 수는 없으나 그 의미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포괄적인 해석을 위해서는 이런 모티브의 고찰을 단념할 수는 없다.

2. 낭만주의와 잃어버린 현실

반 정신분석적 비평가들은 예술가를 노이로제 환자와 같은 범주로 묶은 프로이드의 해석에 반대했다. 프로이드의 해석에 따르게 되면 삶의 파탄이 곧 예술 창조의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노이로제와 예술은 현실로부터 심리적으로 떨어져있다. 그러나 노이로제가 현실의 부정이 아닌 망각인데 비해 예술은 현실을 대체하길 원한다. 정신분석적 예술해석이 사실세계의 파괴와 같은 감수성에 우리의 관심을 관련시켜주었다면 우리는 먼저 이런 해석의 낭만주의적 한계를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프로이드의 예술인식은 성급한 일반화에 기초한다. 예술은 변화무쌍하며 그렇게 조리가 정연한 정신적 태도를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다양한 형식을 올바르게 다루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회적 배경 속에서의 예술의 목적과 경향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프로이드가 진술한 의미에서의 예술가 개인의 요구와 사회 집단적 요망의 불일치는 바로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두드러졌다. 낭만주의 시대 이전의 예술은 삶과 교환하여 얻은 대용물로서의 의미가 아니었다. 낭만주의 이전 예술창작의 선행조건으로 삶의 상실을 드는 것은 그래서 들어맞지 않는다.
낭만주의적 관점에서 현실의 거부는 예술 창조에 동반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성공적 예술 창작에 필요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즉, 예술은 삶의 보상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술은 삶의 복사가 아닌 꾸며낸 이야기이다. 그것은 삶의 향유라는 차원과 양립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의 표현이지 소유가 아니며, 말하는 것이지 갖는 것이 아니다. 근대의 낭만주의 예술가는 그가 살고 싶었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종의 낙오자였다.

정신분석적 예술이론에 내재되어있는 낭만주의적 성격은 예술적 창조성에서의 비합리적이고 직관적인 요소들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런 낭만주의와 반대의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은 예술적 천재를 정의함에 있어서도 영감을 기교와 취미로 대체시켜버린다. 윌리엄모리스는 “영감에 대한 그 따위 이야기들은 완전히 넌센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없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장인의 손재주에 불과하다.”라며 낭만주의 이전의 가치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예술가가 정신적인 선각자의 노릇을 하게 된 것은 르네상스 이후부터다. 과학과 결합한 예술은 지위를 획득하고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자신을 애매한 천재의 지위로 만들어 일반인들보다 우월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런 노이로제와 같은 낭만주의적 정신체질은 정신사적 맥락에서 보면 예술이 사회적 역할을 상실했을 때 두드러졌다. 계몽주의와 프랑스 대혁명에 걸쳐 드러나는 낭만주의적 기질은 부르주아지들에 대한 도전자로서 보이고자 했던 -그러나 희생양에 불과했던 – 것에 불과하며 끊임없는 경쟁으로부터 야기된 초조함의 소산이며 물질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불안의 결과이다. 정신분석은 개인의 삶과 작품이, 그의 사생활과 공적인 기능이 따로따로 떨어진 두 영역으로 분리되어버린 이러한 역사적 상황의 산물이다.

3. 대용만족으로서의 예술

예술은 언제나 삶의 교정이며 우리의 현존이 안고 있는 결함에 대한 보상을 표현하는 것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예술은 삶과 우리를 화해시키는 수단을 지니고 있다. 예술의 효과는 운명의 압도적인 힘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항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괴로움을 충분히 지각 가능하게 만드는 점에서 단순한 마취적 효과와는 차이가 있다.

예술을 승화, 상징화, 대리만족의 수단으로 보는 정신분석적 설명은 하나의 본질적 특징을 공유하는데 바로 ‘예술체험의 역동성’이 그것이다.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해 세계와 끊임없는 불화관계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변화하는 ‘자아’에 대한 발견은 프로이드가 거둔 가장 큰 결실이다.
정신생활이 발생하는 것은 충동이 어떠한 저항, 즉 억압하는 힘의 저항에 부딪혔을 때이다. 정신에 있어 의식과 무의식은 항상 대립하는데, 충동을 억압하여 무의식 속에 잠겨두거나 밝은 의식으로 올려내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억압은 더할 나위 없이 동적인 개념이다.

정신활동을 밖으로 드러난 현상이 아닌 감추어진 공격 . 방어적 책략으로 이해하는 노출심리학에 예술비평이 얼마나 힘입고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정신분석이 예술이해에 근본적인 공헌을 한 점은, 예술작품의 근원이 리비도에 있다는 것을 밝히는 등의 생물학적 정의에 있다기보다는, 예술 창작을 합리화시킨 데에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은 예술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흠이 있다. 그것은 대체로 정신분석의 사고방식이 충분히 역동적이지 못했던 것에 그 이유가 있다. 보다 융통성 있는 개념을 갖고 있었다면 예술의 독특한 형식과 가변성을 밝힐 수 있었을 것이며 훨씬 포괄적이고도 덜 독단적인 이론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4. 심리주의와 정신적 구조물의 자율성

정신분석학 이전의 심리학이 대체로 자연과학의 방법을 차용하여 인간 정신을 비인격화시킨 것에 반해, 정신분석학은 어느 정도의 상투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신적 체질을 생물학의 유일, 불가변적 표현으로 파악했다. 그것에 의하면 과거에 우연적으로 취급되던 비합리성, 불규칙성, 강박행동, 공포마저도 순전히 정신적으로 결정된 현상이다. 프로이드 학설의 의의는 이처럼 교육되어질 수 있는 최초의 심리학 이론이라는 데에 있다.

예술비평에 대해 정신분석이 갖고 있는 방법적인 특징은 으뜸간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 형식적인 구조를 통해 표현되는 예술의 해석에 얼마나 올바르게 다가가느냐 하는 것이다.
정신은 작품의 생성을 가능하게는 하지만 작품을 이루고 있는 재료 자체는 아니다. 어떤 감정적 동기가 예술적 의미를 얻는 것은 그 동기가 들어가 있는 ‘작품의 전후관계’에 힘입은 것이지, 그 동기를 담고 있는 ‘체험의 전후관계’에 있지 않다. 우리가 ‘작품의 기원’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멀리 그것의 ‘예술적 의미’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다. 작품을 작가의 전기에 지나치게 연관시키는 것은 심리학의 남용이다.

프로이드는 “작가의 창조력은 반드시 그의 의지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며, 작품은 때때로 작가와 맞서서 그와 독립된 낮선 존재가 되기도 한다.”라고 밝혔는데, 여기서 우리는 예술 창작과정에 비심리적인 요소들이 작용한다는 것을 그도 알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작품의 모든 특징은 두가지 방식으로 결정된다. 첫째는, 그것이 겨냥하는 효과에 의해서이며 둘째는, 그것의 근원적 체험에 의해서이다. 예술작품은 여러 동기가 작용하는 다원적 결정에 의해 조건지워진다.

예술작품은 예술가를 제외한 채 예술비평이나 예술사로서 설명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은 그 예술작품이 생성되는 상황과 연관되지 않는 한 설명이 불가능한 것도 있다. 그럼 면에서 정신분석학은 정신의 의식적인 과정과 무의식적인 과정의 연관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목적을 추구하는 주관적인 태도에 대한 이론이지 객관적인 연관들을 밝힌 학설은 아니다. 그것이 설명하는 것은 정신의 매커니즘이다.

5. 정신분석, 사회학, 역사

정신분석의 관점은 반역사적이다. 프로이드는 사회학과 역사학을 심리학의 하위로 종속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신 분석에 있어서 사회학적, 역사학적 개념을 흐려버렸다.
그가 정신분석이 유기적인 생물학적 사실 위에 세워진 체계라고 한 점은 타당하다. 그러나 애초의 ‘충동’이 ‘비본능적인 동기’에 의해 감시받고 억제되는 그런 정신구조에 ‘본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했던 것은, 정신분석에 따른 오류의 근원이기도 하다. 실지로 본능은 사회적 역사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그는 간과했다.

사회학은 심리학 보다 더 우위에 있다……

프로이트는 집단정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개인만이 욕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잊은 것이다…

정신분석적 개념이 갖고 있는 비역사적인 성격은 무엇보다도 그것의 출처가 자연과학에 있다는 점과 관련이 깊다. 그는 정신분석과 관련한 사고 전체를 시간적인 범주보다는 공간적인 범주에 한정하여 ‘계량화’했다.

양적 평가는 정신의 표명에 적합하지 않다. 그가 예술향수와 위트의 효과를 에너지절약으로 설명하려 했을 때, 사실 그는 낡은 전(前)분석적 심리학의 기계론적 견해로 복귀한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그의 사고의 혁명적 영향력이 가장 적게 느껴지는 부분중 하나이다.

* Author / Gathered from : ?예술사의_철학 (아르놀트 하우저)의 부분을 SSALL이 요약

정말 이혼율이 그렇게 높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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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동안의 이혼자수와 기혼자수를 비교하는 통계가 가지는 오류를 지적한 기사가 떴다.
최근의 보도에서 이혼율이 심각하다는 것은 모두 위의 기준에 따른것이지만, 실상 결혼자수가 아주 적으면서도 이혼자수는 평년치를 유지할 때, 그 해에는 결과적으로 이혼율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그 해에 결혼한 사람들 중 이혼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일반인들은 오인하기 쉬운 것인데 쥔장 또한 마찬가지였음은 두말할것도 없다.. 이런 낭패가…. -_-

하여간 이혼이 많아지겠다는 것이 심정적으로 느껴지더라도 최근의 50%에 육박하는 이혼율에 세상의 종말을 두려워하던 사람은 그럴것까지는 없을것같다.

아.. 어처구니없는 통계의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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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이혼율 계산방식에 큰 문제"…법원행정처

우리나라 이혼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지난해 발표나 통계청의 통계자료는 정확한 `이혼율’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법원행정처에서 제기됐다.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학교가 공동 발간한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관계 연구 보고서’의 우리나라 결혼 대비 이혼율이 47.4%로 매년 결혼하는 2쌍 가운데 1쌍이 이혼한다는 발표는 특정 연도에 혼인한 부부가 이혼한 비율로 오해될 수 있어 올바른 `이혼율’로 보기 어렵다고 19일 지적했다.

이처럼 연도별 혼인건수와 이혼건수를 단순비교하는 것은 `이혼율’로서 의미가없으며, 이 계산방식으로는 어느 해 결혼인구가 급격히 줄면 100%가 넘는 이혼율이나올 수도 있다고 법원행정처는 설명했다.

법원행정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과 우리나라 통계청이 채택하고 있는 조이혼율(粗離婚率.Crude Divorce Rate) 역시 사실혼 관계가 많은 유럽과혼인신고율이 높은 우리나라의 이혼율을 비교하는 기준으로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총인구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조이혼율은 결혼과 무관한 아동층 인구까지계산에 포함하므로 정확한 수치를 얻어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조이혼율이란 매년 발생한 총 이혼건수를 해당 연도의 연앙인구(年央人口.7월1일 기준 총인구)로 나눠 천분율(‰)로 표시하는 것인데 2002년 우리나라 조이혼율은3.0으로 덴마크(2.8), 네덜란드(2.1), 스웨덴(2.4), 핀란드(2.6), 헝가리(2.5) 등유럽 OECD 회원국들에 비해 높다.

법원행정처는 이처럼 통계적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이혼율’의 적절한 계산방법으로 특정 시점 혼인경력자의 총 혼인횟수를 분모로, 같은 시점 이혼경력자의 총이혼횟수를 분자로 놓고 계산한 백분율을 제시했다.

이 방법에 따르면 올 1월말 현재 국내 혼인경력자의 총 혼인횟수는 2천815만6천405건, 총 이혼횟수는 262만3천659건으로 이혼율은 9.3%이며 부부 11쌍중 1쌍이 이혼한 셈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기존의 계산방식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법원이 계산한 방식이 우리나라 사정에 더 적합하다고 본다”며 “법원은 `호적정보시스템’으로호적이 전산화돼 전산작업을 통해 필요한 자료를 쉽게 얻어 계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는 통계청 자료를 인용하고 있으며 통계청도 매년 이혼율을 발표할 때 이혼율과 혼인율을 단순비교하지 않도록 `유의사항’을 적시한다”며”지난해 발표는 복지부 공식 의견이 아닌, 꽃동네사회복지대학교 연구팀의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문화관광부의 ‘새예술 정책’ 시안

컬쳐뉴스 [기획] 새예술 정책 미리보기 / 4. 시각예술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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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천현대미술관 전경. 시민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문화관광부는 문예진흥원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칭) 개편 등 새로운 예술환경에 발맞춘 ‘새예술 정책’을 2월말에 발표할 예정으로 현재 의견수렴 중에 있습니다. 이에 본지는 ‘새예술 정책'(시안)의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합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향후 이 정책에 대한 각계의 의견개진을 기대합니다.(문화부 정책토론방 바로가기)

이 기사는 컬쳐뉴스의 기사를 갈무리했습니다.

글 싣는 순서
1. 총론 -①
2. 총론 -②
3. 문학부문
4. 시각예술부문
5. 공연예술부문
6. 전통예술·지역문화부문

4. 시각예술부문

(1)환경변화와 수요 전망

시각예술분야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환경변화는 지식정보와 사회로 인한 디지털 문화의 확산이다. 첨단매체의 활용이 증가하는 것과 함께 장르 해체와 복합화 경향이 증대하고 있으며 미디어 아트가 새 장르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인 환경의 변화로는 △주5일제 확대와 소득증대로 인한 삶의 질 추구 가치 확산 △민주주의 발전과 시민사회 성장 △지방자치제의 정착과 지역분권을 통한 지역문화 활성화 요구 증대 등이 꼽힌다. 이밖에도 새예술정책은 지자체와 민간이 주도하는 각종 국제미술 행사가 증대하는 등 세계화 및 동북아 지역의 블록화가 진행됨에 따라 해외미술시장 진출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2)기존 정책의 문제점

새예술정책은 시각예술분야 기존 정책의 문제점을 대략 다음의 여섯 가지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1)순수미술 위주의 지원정책으로 인한 사진, 디자인, 공예 등 장르간 지원 불균형 초래 2)창작스튜디오 개념 미비, 문예진흥기금 절대액 부족 등 창작지원의 문제 3)국립현대미술관의 접근성 문제, 공립미술관 절대량 부족, 사립미술관 지원 미비 등 인프라 조성의 문제 4)건축물 미술장식제도 시행상의 혼란 등 예술향수 부문의 문제 5)미술시장의 장기침체, 해외미술시장 개척을 위한 지원, 사진에 대한 진흥책 미비 등 미술시장 문제 6)국제비엔날레 참가 및 이론적 학술적 교류를 포함하는 국제교류 지원 부족 등이다. 추진전략 및 정책의 방향은 이 문제점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3)중점 추진과제

과제1. 국립미술관 체제 개편 및 운영 활성화
국립미술관의 운영 활성화를 위해서는 ①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시내 이전 추진 ②국립현대미술관 조직개편 및 전문인력 확충 ③덕수궁 분관의 근대미술 연구 및 전시 기능 강화 ④국군기무사 부지 활용방안 마련 등이 과제로 꼽혔다. 시민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을 서울로 이전, 전문인력 확충을 통해 조직구조를 개편하는 것은 물론, 덕수궁 분관을 이용한 근대미술연구를 강화하고 사간동 기무사 부지에 국립21세기 미술관을 설립하여 미디어아트 분야의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과제2. 등록미술관 확충 및 운영 활성화
등록미술관 운영활성화 항목에는 ①공립미술관 확충 및 운영활성화 ②사립미술관 확충 및 운영활성화 ③학예사 제도 개편 및 미술관 전문인력 양성 등이 과제로 선정됐다. 현재 절대량이 부족한 공립미술관의 확충을 위해 1시도 1미술관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규모에 따른 운영기준을 강화하는 것과 함께, 수적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립미술관에 대한 실태조사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학예사 제도를 개편하는 것과 함께 연수프로그램 확대, 전문인력간 네트워크 구축, 인턴제도 확대 등이 제시되었다.

과제3. 젊은 미술가의 실험적, 대안적 창작 지원
신진작가 지원을 위해 ①마로니에 미술관을 영국 ICA나 프랑스 팔레 드 도쿄와 같은 지원센터로 육성하는 동시에 ②대안공간에 대한 지원기준을 정비하고 지원의 다각화를 통해 민간 비영리 미술공간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과제4. 창작스튜디오 확충 및 레지던스 프로그램 도입
작가들의 창작활동지원을 위해 ①창작스튜디오 설치 근거법 제정②국립창작스튜디오 운영개선 및 국제창작스튜디오 조성③공립 창작스튜디오 확충 및 운영 활성화④개인 및 민간 창작스튜디오 지원⑤전국 창작스튜디오 네트워크 구축 등이 과제로 꼽혔다.

과제5. 공공부문의 미술품 활용 증대
미술품 활용을 통해 공공기관을 문화적으로 리모델링하는 동시에 신진작가의 작품 구입을 통해 창작을 지원하는 방안이다. 구체과제로 ①미술은행 제도 도입 ②공공기관 대민서비스 공간 개선 시범사업 실시 등이 선정되었다.

과제6. 건축물 미술 장식제도를 공공미술제도로 전환
건축물 미술 장식제도는 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측면이 많았다. 이의 해결을 위해 ①미술장식 개념을 공공미술로 확대 ②민간건축주 미술장식비용 기금출연시 할인혜택 부여 ③국가 등 공공기관의 미술장식비용을 1% 이상으로 환원 ④제도의 투명한 관리를 위해 공공미술 데이터베이스 구축 ⑤공공미술 중개업체 등록제도 도입 및 중개수수료 양성화 ⑥공공미술센터를 설치하여 시행 평가 및 감리기능 강화 등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과제7. 문화도시 조성을 위한 건축의 역할 증대
도시의 문화경쟁력을 제고하고 문화공간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건축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①문화공간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문화부 내 조직체계 일원화 ②문화공간 인증제도의 도입 ③가로, 공원, 광장, 어린이 놀이터 등의 문화적 리모델링 사업 추진 ④도시문화 거점공간 조성 ⑤도심 내 사용하지 않는 공장, 발전소, 공공시설 등을 문화시설로 전환 ⑥도시 역사문화 회복과 근대건축물의 보존 및 지속가능한 활용 등을 과제로 선정하고 있다.

과제8. 디자인의 문화적 가치 확산
디자인에 대한 문화정책적 접근은 사회 전체의 문화 수준과 삶의 질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새예술정책은 이를 위해 ①디자인 문화원 설립 ②국공립미술관 디자인부 설치 ③디자인미술관 개편 ④공공디자인 및 디자인 교육 전시회 개최 ⑤각종 공공사업에서 디자인 실시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을 제시하고 있다.

과제9. 공예의 예술적, 산업적 가치의 조화발전
관광기념품 개발 정도의 인식에 머물러 있는 공예의 예술·산업적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①한국공예문화진흥원 확대 개편 및 예술산업과로 이관 ②공예미술관 설립 ③인증 및 공모전 통합관리 시스템 지원 ④공예산업 클러스터 조성 등이 제시되었다.

과제10. 사진문화 진흥
이미 주요 예술형태로 등장한 사진문화 진흥을 위해 ①사진아카이브 설립 ②국가 및 지자체 공공건설 및 공공행사시 사진기록 의무화 ③젊은 세대 사진작가의 창작활동 지원을 위한 사진센터 설립 ④국립현대미술관 사진영상 콜렉션 체계화 등이 과제로 선정됐다.

과제11. 미술품 유통구조 개선 및 시장 활성화
작년 말, 미술품 종합소득세법이 폐지되었지만 미술시장의 침체는 여전하다.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개혁하고 시장을 활성화 하기 위해 ①법인의 미술품 투자 규제 철폐 ②개인의 미술품 구입 우대방안 마련 ③미술품 감정연구소 설립 지원 ④화랑의 전속작가제도 운영 지원 ⑤미술품 경매 참여자의 신원 보장 ⑥해외시장 진출 화랑 및 경매사에 대한 융자지원제도 도입 등이 과제로 제시됐다.

과제12. 국제미술교류 확대
국제교류가 활성화되지 못해 세계 미술계에서 인지도·지명도가 낮은 한국미술의 현황을 타개하기 위해 ①국내 국제비엔날레 운영 효율성 제고 ②해외 국제비엔날레 참가 지원 ③외국 주요미술관 전시 유치 및 전국 순회전 지원 ④미술인 펠로우쉽 도입 등이 과제로 제시됐다.

[ATHⓒ컬처뉴스] 2004-02-11 오후 8:33:37

서울시 양심선언, “아파트공사 40% 폭리”

거센 후폭풍 예고, 건설업계 탈세-비자금 조성 혐의
2004-02-04 오후 12:03:14 프레시안 기사

서울시가 건설교통부 등 정부 및 건설업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일 마침내 도시개발공사(도개공)가 시공한 서울 상암 7단지 40평형의 분양원가를 공개했다. 그 결과는 예상대로 ‘40% 폭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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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4일 서울 상암지구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한 결과 분양가의 40%에 육박하는 평당 4백70만원의 분양차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분양원가보다 4백74만원 올려받아 3백10억원 분양차익

도개공이 이날 공개한 40평형(전용면적 32평) 상암 7단지 분양원가는 평당 7백36만원으로, 실제 분양가 1천2백10만원보다 4백74만원 정도 적었다. 분양원가가 분양가의 60.8%로, 도개공은 분양을 통해 39.2%의 폭리를 취했다는 얘기다.

도개공은 민간회계법인에 용역을 의뢰, 기업회계 기준의 순수공사원가에 토지매입이자, 건설자금 이자 등을 포함해 분양원가를 산출해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도개공은 분양원가 산정 기준을 둘러싸고 가장 큰 논란이 돼온 토지비를 ‘평당 부지 매입가격’을 기준으로 삼았다. 지난해 11월 분양된 상암7단지 40평형 1백62가구만을 따질 때 도개공은 지난 2002년 서울시로부터 7단지 부지 3천7백64평를 평당 5백32만원, 총 2백억2천7백여만원에 사들였다. 그러나 분양 연면적이 6천5백46평인 점을 감안하면, 순수대지비는 평당 약 3백5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도개공은 여기에다 평당 건축비 3백40만5천원(총 2백22억6천여만원)과 토지비 이자 및 건설자금 이자, 판매비 및 일반관리비, 부가가치세 등을 합한 기타비용(평당 90만2천원)을 더해 7백36만원이라는 분양원가를 도출해냈다.

건축비에는 건축공사비 15억6천6백만원을 비롯 토목.기계.전기.통신.조경공사비와 설계비. 감리비. 승강기 설치. 기타부대비. 간접공사비. 부가가치세(1백91억2천5백85만원) 등 12가지 항목이 포함됐다.

분양원가보다 4백74만원 가량 올려받아 분양한 도개공은 총 3백10억원의 분양차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분양수익 3백10억 가운데 2백억원은 임대아파트 건립에, 1백억원은 고교생 장학금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미증유의 후폭풍 예고

도개공이 이날 제시한 계산 방식은 민간업체가 시공하는 아파트의 분양원가를 따질 때 근거로 사용될 수 있고, 이명박 서울시장은 앞으로 필요할 경우 도시개발공사가 분양하는 아파트의 분양원가를 공개할 것이라고 밝혀 앞으로 건설업계에 미칠 파장이 거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그동안 건설업체들이 막대한 분양차익을 거두고 있는 의혹이 커지면서 공공기관이 모범을 보이겠다며 지난해말 분양원가를 추진했으나, 건설교통부를 비롯해 대한주택공사나 민간업체들이 “분양원가 공개는 분양가 규제로 이어지게 되며 주택공급시장의 위축을 초래한다”며 반발하자 공개시기를 늦춰왔다.

김승규 도시개발공사 사장이 분양원가를 공개하면서 “분양원가는 사업지구의 토지시세 등 사업 여건에 따라 차이가 난다”면서 “개발방식과 택지확보 방법이 서로 다른 민간업체와 분양원가를 단순 비교 분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덧붙여 이같은 건설업계의 반발을 피해가려고 했다.

하지만 도개공의 분양원가 공개는 그동안 건설업체들이 아파트 건설을 통해 얼마나 거대한 차익을 거둬왔으며, 이는 동시에 현재의 아파트값에 얼마나 큰 거품이 끼어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미증유의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최근 검찰의 불법대선자금 수사과정에 대다수 기업이 비자금을 건설회사에서 조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건설업체들이 공사비 부풀리기 등의 탈법수단을 동원해 비자금을 조성해 정경유착의 수단으로 사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아울러 이같은 엄청난 폭리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체들의 납세 실적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탈세여부에 대한 국세청 조사도 필요하다는 게 지배적 여론이다.

이승선/기자